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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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견뎌내려 했는데 // 잡문

술에 취해 겨우 잠들었는데, 자다가 엄청 울었다. 꿈도 아무 것도 기억 안 나지만 잠이 든 채 이미 울고 있었고, 결국 새벽에 잠든지 한 시간 만에 깨서 엉엉 울었다. 어떻게든 견뎌내려 했는데. 그래서 술 때려붓고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너져버렸다. 너무 많이 울었다. 꿈에서 깼을 때 이미 너무 많이 울고 있어서 견딜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다 싫다. 누군가 날 부드럽게 죽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든 새벽. 어떻게든 견뎌내려고 죽을 힘 다해 노력한 건데. 그래서 세차도 하고 한강도 가고 술집도 가고 어떻게든 그 새벽에 사람들 속에서 살려고 한 건데. 이런 식으로 무너지면 나도 방법이 없잖아. 잠 든 시간마저 무너지면 나더러 어쩌라고. 그 힘든 새벽은 오늘 또 오겠지. 또 그걸 견뎌내야 한다는 게 안 믿긴다. 새벽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침대 옆에 휴지가 한가득이다. 다 싫다. 진짜 너무 싫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그냥 누가 날 죽여줘. 나도 아무도 모르게.




무너지는 마음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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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이전의 글들을 찾아봤다. 내 인생의 힘든 시기의 글들. 이 블로그는 우울과 고통의 무덤이라 거의 모든 시기의 글이 힘든 글이지만 특별히 더 힘들었던 그 시기의 글들. 쭉 읽어보니 나는 늘 죽고 싶었고 살고 싶었고 외로웠고 괴로웠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힘든 시기엔 특별히 더 그랬다. 지금도 아마 그런 시기.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아호, 나의 아들> 이라는 영화를 보면, 수재에다가 착한 첫째 아들이 불현듯 자살을 한다. 그의 친구였던 한 아이는 그의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남들한테 정말 친절한 애였죠. 가끔 어쩔 땐 남들한테 친절을 다 줘버려서 자기 몫은 잊고 못 챙긴 듯 했어요." 이 대사를 보면서 S는 '너 같네' 라고 말했다. 그때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의하고, 지금의 나는 내가 왜 이런 인간일까 골몰히 생각한다. 나의 한 친구는 내 다정함은 너무 특별해서 아무 사람이나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골몰히 생각한다. 지난 나날들. 내가 다정히 대하고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 그들과 있었던 지난 일들을 떠올리면서도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골몰히 생각한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나는 아마도 타인에게 대부분 친절하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일 텐데 나 스스로에게는 좋은 사람인 적이 없다. 나는 왜 이런 인간일까. 요즘 나는 툭 건드리면 눈물이 흐르는 상태. 눈 안에 눈물이 가득하다. 아마 2년 전에 이랬다. 한강에 내 눈물이 반이야, 2년 전의 나를 떠올리면서 늘 던지는 농담이다. S가 나이가 들면 정을 떼는 게 쉬워지냐고 물은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정확히 알겠다. 더 어렵고 지친다.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들고 이렇게까지 울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운다. 점점 이런 감정을 견뎌내는 게 힘들고 지친다. 38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익숙해지기보단 지쳐만 간다. 점점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땡볕에 홀로 서 있는 기분. 영혼이 바싹 말라간다. 38년을 이랬다. 그냥 다 그만두고만 싶어진다. 38년을 이랬는데 언제까지 더 이렇게 살아야 돼. 나도 그냥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어. 이제 그만 울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마음을 어떻게든 붙잡고 살아가는 나는, 그저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는, 나는 내가 대체 왜 이런 인간이 됐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이에도 마음은 무너지고 무너지고 몇 번이나 무너진다. 가슴이 내려 앉는 게 느껴진다. 어딘가 숨어서 엉엉 울고 싶다. 이 문장을 적는 사이 또 내 마음은 무너진다. <아호, 나의 아들>에서 자살한 첫째 아들은 죽기 전에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세상에서 제일 공평한 건 태양이야. 위도가 어떻든 지구 모든 곳엔 한해 동안 똑같은 총량의 낮과 밤이 있잖아. 우리 며칠 전 동물원에 갔지. 햇살이 내리쬐는데 너무 강해서 동물들이 못 견디더라. 다들 숨을 그늘을 찾았지. 말로 설명 못할 묘한 느낌이 들었어. 그러곤 그 동물들처럼 나도 그늘에 숨고 싶었어.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그늘에 숨을 수 있는 건 동물들 뿐이 아니더라. 너, 내 동생, 사마광까지. 다들 그늘진 구석을 찾을 수 있었지만 난 아니었어. 내겐 항아리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햇빛만 있었지. 24시간 내내 방해 없이 밝고 따뜻하게 만물을 내리쬐는 햇빛."  

드라마를 보다가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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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다가 옛날 한 때의 일이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무릎 꿇고 앉아서 엉엉 우는 엄마를 바라봤고, 누나의 전화를 받으면서는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 면회를 가서 유리창 너머 아빠의 숨겨둔 쪽지에 사랑한다는 글이 적힌 걸 보고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그날은 우리가 진 날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패배감이라는 걸 똑똑히 배웠던 그 날. 패소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졌다는 걸 알았고, 그때의 기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법원 복도 무심히 지나치던 사람들 속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엄마도, 그앞에 무릎 꿇고 앉았던 나도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하겠지. 이때의 일이 생각나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다. 괜히 눈물을 훔치게 된 새벽. 요즘 새벽이 힘들긴 힘들다. 낮엔 멀쩡하다가도 새벽이 되면 오롯이 혼자가 된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혼자 이겨내야 하는 시간. 아직 혼자가 되기엔 너무 나약한 건지 요즘은 늘 새벽이 힘들다. 내일은 조금 더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 괜찮아, 주문처럼 외워보지만 막상 또 내일 새벽이 되면 나에겐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된다. 언제까지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걸까. 이겨내야 하는 걸까. 그냥 좀 편하게 보내고 싶은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이제 그만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행복이란 건 타고난 체질과도 같아서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은 조그만 일에도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사람처럼 행복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은 어떠한 일에도 행복감을 못 느낀다고. 나는 아마 명백히 후자의 사람일 테고, 남은 생도 계속 이렇게 살겠지. 그래도, 그래도 내일은 조금은 더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힘든 새벽. 잠은 안 오고. 이렇게 또 하루가 넘어가니까.




제발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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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다. 새벽이. 딱 죽고 싶은 그런 새벽. 웃으려 해도 웃음이 안 나오다가 지금 나는 많이 힘든 거구나 생각하자 죽고 싶은 마음이 됐다. 언제까지 이런 새벽을,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나. 이제 그만. 제발.


그때까지 내가 잘 살아 있다면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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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란 게 무섭다. 아까는 TV를 보다가 단짝이라는 단어를 봤고, 그 단어가 나올 때 배경 음악으로 나왔던 게 같이 들었던 가수였고, 어제는 후배를 데려다 주러 간 곳이 그의 전직장 근처였다. 단짝은 내가 그를 저장해 놓은 이름이었다. 그는 내 차에 가장 많이 탔던 사람이라 사실 운전할 때마다 종종 생각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추억이 튀어 나오고 그 순간 마음이 쿵, 떨어진다. 같이 산 정이라는 게 이리 무서운가보다. 얼마 후면 이사를 간다. 이곳에서 산지 5년 째. 여길 떠나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이사를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의 계기로 결국 가게 됐다. 언제는 이 동네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벌써부터 이곳이 그리워 눈물이 터져 버렸고, 또 언제는 이 동네의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이제 그만 여길 뜨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하다고. 5년 간의 추억이란 게 이리 무섭다. 하지만 또 그게 없으면 난 뭘로 살아가나 싶고. 나는 확실히 과거 지향적 인간. 앞날을 기대하고 도모하기보단 과거에 사로잡혀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이렇게 산다. 지나간 일 떠올리며 슬퍼하고 또 슬퍼하고. 나를 떠나간 사람들. 내가 떠나 온 사람들. 시간들. 잡으려 하면 늘 멀리 가버리는 나의 소중한 사람과 시간들. 그래도 이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겠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빠져 지낼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내가 멀리해야 할 감정이라는 걸 알겠다. 직업상 나는 감정을 더 잘 느껴야 한다고, 하나의 감정에 더욱 파고 들면서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병들었다. 나이가 드니 회복이 더디다. 슬픔에 한번 빠지면 쉽게 회복되지도 않고, 상처도 곧잘 낫지 않는다. 지금도 모든 게 너무 슬프고 아프기만 하다. 우린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아프게 왜 계속 살아야 해. 이 블로그는 언젠가부터 슬픔의 무덤 같은 곳이 되어 버려서 사실 이곳에 글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슬픔. 한동안은 이곳에 글을 많이 쓸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안다. 슬픔은 이곳에 묻고 나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이 블로그는 나에게 무엇이 될까. 이 글들은 무엇이 될까. 그때까지 내가 잘 살아 있다면. 그럼 다시 이 글들을 볼 수는 있겠지. 그때까지 내가 잘 살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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