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

nip21.egloos.com

포토로그



지켜주세요 // 잡문

-
내가 어둠 속으로 끌려가지 않게, 지켜주세요.


감정기복 // 잡문

-
요즘은 감정기복이 심하다. 쉽게 우울해지고 어렵게 평정심을 찾는다. 쉽게 외로워지고 어렵게 평정심을 찾는다. 우울하고 외롭고 공허하고 허무하고 무기력해지는 건 순식간이고 그걸 회복하는 건 조금 어렵다.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수시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럴 사람은 없고, 그럴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된다. 회복되고 난 뒤에 난 분명 그 누군가가 필요없어질 테니까. 나에게 필요한 건 글, 일, 그런 것들. 오늘은 미팅이 빨리 끝나 급 시사회를 다녀왔는데, 사실 시사회를 다녀오면 그리 기분이 좋진 않다. 그곳엔 늘 별들이 모여 있고 나는 아직 별이 아니니까. 그냥 시사회 같은 건 초대 받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오늘은 그간 궁금했던 영화라 시사회에 다녀왔지만, 다녀오면서 역시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평소 특별한 애정으로 아끼던 배우를 봤고, 나중엔 그 배우와 함께 일해야지, 생각하면서 오기로 버틴 시간. 아마 내 직업은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오기로 버티고 버텨야 할 직업이겠다. 누구도 봐주지 않는 글을 쓰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세상에 나갈 시간을 기다린다. 그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때를 기다리며 계속 쓴다. 참 외로운 직업이다. 그래서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하게 된다. 아까 이러면서 사나보다 싶었던 순간이 하나 있었는데, 백예린의 새로운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봤을 때. 고작 그런 순간이다. 좋아하던 가수의 새로운 앨범 소식을 듣고 조금 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어제는 좋아하던 애니메이터의 신작 예고편이 나와서 그걸 몇 번이나 돌려보며 힘을 냈다. 그렇게 버틴다. 그리고 또 쓴다.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때때로 한강에 나가며. 잘 살고 싶다. 나는 그냥 잘 살고 싶다.      

오래 전에 알던 사람 // 잡문

-
오래 전에 알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때 친했고 서로의 사정으로 자연스레 연락은 끊어졌지만 언제든 연락하려면 할 수 있는 정도의 사이. 막연히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잘 못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놨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덧붙이며 살아가는 힘듦을 토로 했다. 누군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만, 이 사람은 내가 쉬이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이 사람의 말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나마 했던 대답이라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알겠어요. 그리고 조금 길게 했던 말이라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의 탓이 아니다. 그정도의 말들. 의사 말고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너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은. 이 사람은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내온 걸까,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가 닿지도 못할 상처와 고통의 나날들. 자신의 이야길 털어놓으면서 몇 번이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저 자기 이야길 하는 것 뿐인데 계속 이어지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이 사람이 얼마나 죄스런 삶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했다. 의식적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입에 밴 미안이었다. 미안이 일상이 되어버린 삶. 실제론 자신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그렇게 되어버린 삶. 그 일상이 되어버린 미안함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라도 괜찮다면, 마음껏 털어놓길 바랬다. 


-
이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언제나 날 다정한 애칭으로 불렀다. 오늘도 날 다정하게 불러왔고, 덤덤하게 힘들다고 털어놨다. 다정함과 덤덤함 사이에서 이 사람이 겪어 왔던 시간과, 지금 지나고 있을 시간의 무게감 같은 게 고스란히 전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되도록 많이 웃으려 했고 태연하게 농담을 했다. 대화하는 내내 힘내, 그래도 살아야지, 너무 슬퍼 마, 기운 내, 이런 말들이 얼마나 쉬운 말인지 실감했다. 너무나 쉽게 떠오르는 이 말을 단 한 번도 내뱉지 않았고, 내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선 안 되는 말이었다. 대신 나도 훨씬 더 다정하게 이 사람을 대해줄 순 있었는데, 그것 역시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사람에게 독이 될까봐. 덕분에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린 서로에게 이렇게나 무심하다. 서로가 진정으로 힘든 순간엔 실상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대화를 다 끝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사람의 인생을 응원해주는 것 뿐. 부디 잘 살길 응원하는 마음. 그 마음을 가지고 계속 살아간다. 난 그냥 당신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정말로. 


-
대화의 말미에 이 사람이 자기와 약속을 하나 하자고 했다. 자긴 잘 살 테니까 너는 멋지게 살라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약속. 약속. 몇 번을 말했다. 유치했지만 이 약속 만큼은 기분이 좋았다. 꼭 지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멋지게 살 테니까, 당신은 잘 살아. 나 약속 지킬 테니까, 당신도 지켜 줘. 

 

몇 번을 열고 닫았다가 // 잡문

-
최근 내 생활이라면 작업실과 집, 때때로 운동, 산책이다. 운동과 산책은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중에 끼어 있으니, 결국은 작업실과 집 사이에 요즘의 내 생활이 다 담겨 있다. 보통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5시쯤. 더 늦을 때도 있고 일찍 올 때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새벽인 건 변함없고 늦을 때가 더 많으며 집에 오면 늘 자야 할 시간이다. 작업할 때는 노동요 리스트를 무한반복해서 듣기 때문에 집에 오면 차분한 음악을 듣는다. 죽을 끓여 먹는다. 자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아 무거운 건 못 먹겠고 그래도 뭔가는 먹고 싶고 음악은 듣고 싶고, 선택하게 되는 건 죽이다. 천천히 죽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는다. 하루의 마무리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자야 하지만 당장 자기 싫어서 괜히 더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보면 공허해져서 블로그를 연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몇 번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겨우 몇 자 적는다. 더 쓰고 싶은데, 내 안에 있는 걸 더 토해내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정도라도 썼으니 잘한 걸까. 


-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다가 이나영에게서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을 본다. 사실 지금의 이나영에게 전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주 가끔, 전경을 그리워 하는 내가 아주 가끔, 발견할 뿐이다. 이나영에게 전경은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나영의 과거는 모두 전경이었다. 최근의 복귀작 <뷰티풀 데이즈>와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이제야 전경이 아니었다. 그전의 이나영은 모두 나에게 전경. 그 시절의 나였다. 
현재의 이나영에게 전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 남아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나는 계속해서 지워지고 흐릿해져 가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나는 나다. 다 잊혀졌다고 생각해도, 아니 잊혀졌다고 여기지도 못할 만큼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가다가도 불현듯 온다. 과거의 나는. 아까 이나영의 모습에서 전경을 본 것처럼. 한 순간에 그 시절이 소환된다. 2002년. 월드컵이 휩쓸고 지나갔던 그 여름, 나는 <네 멋대로 해라>에 울고 웃었다. 지금도 <네 멋대로 해라>를 생각하면 운다. 아까 이나영의 연기를 보며 전경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와르르 무너졌다. 그 말투에, 그 얼굴에, 텅빈 청춘이 있었고 뜨거운 여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 37살이 된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쓰고 쓰다가 잠이 드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점점 단조로워지고, 불필요한 것들이 다 걸러지면서 자연히 글만 거름망에 남는다. 얼마 전 한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글을 못 쓰게 되면 그냥 죽게 될 거야, 라고 말했다. 그건 죽겠다, 라는 의지이기보다는 아마 자연스럽게 나는 죽게 될 거라는 의미였고, 그건 조금의 과장도 허세도 아니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글을 못 쓰게 되는 내 삶은, 살아있다 해도 아마 여분의 삶일 거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지내다 보니 봄이었고, 지내다 보니 겨울이었고, 지내다 보니 나는 30대가 됐고, 37살이 된 것처럼, 어느새 글을 못 쓰는 삶은 삶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살다보니, 살다보니 다 지금의 모습이 된 거겠지. 오늘 집필하던 작품에 그런 지문을 쓰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모두 어릴 때 꿈꾸던 내가 되셨나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새벽. 모두 잘 지내나요. 살아 있습니까. 나는 이런 내가 됐습니다. 전경이 시간이 흘러 강단이가 된 것처럼, 20대의 나는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 말투에, 그 얼굴에, 과거의 나를 보고, 텅빈 청춘을 본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마지막엔 늘 잘 살자, 잘 살아야지, 다짐한다.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비는 것처럼.


매일 글을 쓰지만 // 잡문

-
매일 글을 쓰지만 그게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난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소리소문 없이.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뭘 썼는지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 매일매일 뭘 그렇게 열심히 해댔는지. 난 언제 어떻게 죽게 될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오늘 하루종일 썼던 그 글을 누군가 보게 될까. 난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 글을 쓴 나는, 이 세상에.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