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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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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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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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는 스튜디오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아키, 호소다 마모루 등으로 이어지는 주류 아니메의 계보와는 다소 동떨어진, 마이너한 아니메 크리에이터다.
아무리 양보해도 대중적인 작가로 보기는 힘들고, 확실한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선 그래도 가장 유명한 아니메 작가로 볼 수 있겠다.
국내에선 <초속 5센티미터>로 가장 유명할 듯 하고, 워낙 유명한 작화 덕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은 지나가다가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듯 하다.
아무튼 이러한 사람이 일본과 중국, 그외 여러 나라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했다고 하니 정말로 궁금했다.
대체 어떤 마술을 부려서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신카이 마코토가 그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건 태생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극장이 암전되고 <너의 이름은.>이 시작했는데, 오프닝을 보자마자 마음이 쨘했다.
신카이 마코토의 인장 같은 것들, 신카이 마코토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들이 여전했다.
그의 색깔을 잃지 않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구나, 그 사실에 감동했다.
일단 <너의 이름은.>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점.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을 창작자들의 대부분이 그런 순간을 꿈꿀 것이다.
나의 작품 세계를 유지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내는 순간.
작가주의라는 인정을 받으면서도 소위 흥행에 성공하는 창작자.
신카이 마코토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는 자신만의 확고한 작품 세계가 있었고, 그 세계는 대중성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아무튼 <너의 이름은.>에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켜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냈다. 
이 사실은 <너의 이름은.>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일단 칭찬 받아 마땅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오랜 팬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이 사실은 감동적이다.
인디 성향의 창작자도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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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신카이 마코토는 장편 서사를 구축할 능력은 없었다. 
아니, 그 능력이 검증된 바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그의 작품을 모두 다 보았지만, 2002년작 단편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보다 더 좋은 스토리의 작품을 보지 못했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장편 애니메이션은 단 두 편이었다.
2004년작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11년작인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그 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스토리 중간중간 시간이 건너뛰면서 단편 서사를 이어 붙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면 신카이 마코토가 베이직한(?) 장편 서사를 구축했던 건 그의 적지 않은 필모 중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단 한 편이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보는 이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순 있겠지만, 스토리에 있어선 합격점을 주기 힘들다.
스튜디오 지브리 계열의 서사를 구축해 그 속에 자신의 색깔을 넣으려 시도한 듯 하지만, 결과적으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만 받았다.

애초부터 신카이 마코토는 일상의 디테일한 순간들을 포착, 짧은 에피소드 속에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를 깊이 표현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 정서를 둘러싼 인물은 늘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외롭고 쓸쓸한 나레이션이 펼쳐지며 클라이맥스에서 동시에 두 사람의 나레이션이 포개지는 연출은 신카이 마코토만의 인장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인물들은 외로움, 쓸쓸함과 같은 정서를 애써 극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 파고든다. 
그걸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게 자기 인생의 숙명인 것 마냥 매달리는 느낌마저 든다(그렇다. 중2병스러운 느낌이다).
그 외로움과 쓸쓸함의 끝에 위로와 사랑이 있다.
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는 외로움, 쓸쓸함, 사랑이라는 것들을 작정하고 느껴보자고 매달리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짧고 콤팩트한 에피소드 속에, 그들의 정서를 진하게 표현해낸다.
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기는 이러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특징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작품이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 이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매우 지브리스럽다.
인물도 주체적이고, 정서를 깊이 파고들기보단 작품을 통해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신카이 마코토의 장기는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작품의 주제, 가치관 같은 것들만 전달하려는 기분이 들었다.
(지브리는 중요한 가치를 전달하면서 정서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도리없이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다 보고는 이게 신카이 마코토의 한계인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후 <언어의 정원>이 나왔다.
<언어의 정원>은 러닝타임이 45분 정도 되는 중편이다.
다행스럽게도 <언어의 정원>에는 그의 장기가 집약되어 있었다.
짧은 에피소드 속에 깊은 정서를 표현해냈다.
사연 있는 남녀 주인공이 등장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일상의 디테일한 순간들이 아름다운 작화로 표현됐다(대박 고퀄이었다).
그외 인물 설정, 배경 설정, 소재, 플롯 등등 모든 게 괜찮았다(준수한 퀄리티였다).
장편 서사를 구축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그의 장기가 되살아난 듯 했다.
거기에 이전보다 진보했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어떤 거대 SF 설정을 가져오지 않고도 두 인물의 정서를 현실 속에서 잘 표현해냈다는 점이었다.
꽤 완성도 있는 멜로 드라마였다.
딱 이정도 수준의 이야기를 장편 서사로 구축할 능력만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정도 러닝 타임 안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고 진하게 표현해 나가는 게 그의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로부터 3년 후, <너의 이름은.>이 등장했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호평, 메가 히트 소식이 들려왔다.
호평은 이해했는데, 메가 히트를 하고 있다는 건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의 팬이 아닌 사람도 반응할 정도의 현상이라면 <너의 이름은.>은 잘 구축된 서사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보통 매니아가 아닌 관객들은 아무리 영상미가 좋고 어쩌고 저쩌고 해도 엉성한 이야기에는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대체 신카이 마코토가(그 신카이 마코토가!) 어떤 마술을 부려 장편 서사 속에 그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해냈단 말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괜히 열광했을리는 없으니, 분명히 스토리의 완성도가 어느 정도는 확보됐을 거라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장편 서사가 완성도 높을리가 없다는 의심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래서 <너의 이름은.>이 많이 궁금했다.

직접 본 <너의 이름은.>은 확실히 이전작들과는 달랐다.
잘 구축된 플롯이 있었다.
극장에서 볼 땐 빈 구석이 꽤 많긴 하다고 생각했지만, 소설까지 읽고 곰곰 돌이켜보는 지금은 그런 지점들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너의 이름은.>은 생각보다 정교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이슈를 담은 스토리다.
항상 개인의 내면만을 바라보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세계에서 확실히 변화한 부분이다.
모든 게 개인의 문제로 수렴되던 시선이 이제 이 세계를 향해 확장되었다고 할까.
나만 생각하던 사람이 이 세계를 걱정하고 염려하게 됐다. 
중요한 건, 이러한 지점까지 <너의 이름은.>의 플롯 속에 모두 담아냈다는 점.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카이 마코토의 이전작들에 비해서 이상하리만큼 큰 폭의 성장이었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온 나로선 이게 한큐에 가능한 성장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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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서사를 잘 구축하지 못하던 신카이 마코토가 어떻게 <너의 이름은.>의 서사를 완성해냈을까.
아마도 도호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도호는 일본의 대형 배급사다.
도호는 <언어의 정원>부터 신카이 마코토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언어의 정원>에서 다시금 신카이 마코토의 가능성이 보였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도호의 합류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서사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언어의 정원> 다음 작품이 바로 <너의 이름은.>이다.
신카이 마코토 본인도 밝히듯이 <너의 이름은.>의 각본은 도호의 전담팀과 몇 개월의 회의를 거친 끝에 완성된 것이며, 특히 프로듀서 카와무라 겐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들과의 협업 속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여태 한 번도 성공적으로 만들지 못했던 장편 서사를 완성도 높게,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구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호가 <너의 이름은.>의 서사를 만들어냈다는 말이 아니다.
각본은 분명히 신카이 마코토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가 각본을 잘 만들 수 있었던 건 도호의 프로듀싱(특히 카와무라 겐키)이 좋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신카이 마코토는 도호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그의 포텐이 터질 수 있었다.
도호 역시 신카이 마코토의 포텐을 알아보고 적극 지원해준 것이며, 신카이 마코토는 도호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 결과물이 <너의 이름은.> 이라고 생각한다.
(도호는 각본 프로듀싱 뿐 아니라 <너의 이름은.>에 음악 RADWIMPS를 비롯해 최고의 스텝들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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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 이전에도 매니아층이 확실히 형성되어 있었다.
대중성은 결여되어 있지만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좋아하는 매니아층이 확실했다.
이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그외 여러나라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의 작품에 대중성이 더해지면서 일본에서 소위 '터졌다'.
신카이 마코토라는 브랜드에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그의 팬들이 잠재해 있던 다른 나라에서도 소위 '터졌다'.
지브리가 해체한 이후 일본 아니메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번 <너의 이름은.>은 그 갈증을 해소해줄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줬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에게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수식어는 알맞지 않다. 전혀 다른 계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의 애니메이션 입소문이란 건 꽤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너의 이름은.>이 아무런 소문 없이 국내에 들어왔으면 이정도 흥행을 할 수 있었을까. 
(개봉 7일차인 지금까지 계속해서 예매율 1위. 첫 주말에 관객수 100만 돌파)
입소문을 타고 장기 상영은 됐을지 몰라도 이정도까지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확실히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 왔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는 많이 다르고, 호불호가 갈릴 만한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아무 입소문 없이 이정도의 호응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다.
<언어의 정원> 정도의 주목만 받고 스쳐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의 애니메이션 입소문이란 건 꽤 중요한 요소다.
전세계적으로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호소다 마모루, 안도 히데아키, 오시이 마모루 등등으로 형성된 아니메 팬들은 무시 못한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아니메의 등장을 계속 기다린다.
아니메는 어찌됐든 일본에서 가장 먼저 공개되고, 그들의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거기서 호평을 받고, 흥행한 작품은 전세계의 아니메 팬들에겐 1순위 기대작이 된다(여기서 아니메 팬들이란 소위 오타쿠만 말하는 게 아니라 지브리 애니메이션만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포함).
이들은 아니메에 대한 선망이 있고, 꽤 충성도 높은 관람객이다.
일본에서의 입소문은 자연히 전세계적인 입소문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
지브리와는 확실히 다른 작품이지만, 지브리를 보고 자란 관객들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
지브리만큼 영향력 있는 아니메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너의 이름은.>은 매우 잘 치고 들어온 상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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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보자.
역시 한 인간의 한계를 미리 설정하는 건 위험하다.
어떤 파트너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장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기본적으로 그런 잠재력이 깔려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덧글

  • 재윤 2017/02/15 07:23 # 답글

    한국에서도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답니다.

    예전에는.

    사회가 망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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