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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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열고 닫았다가 // 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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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생활이라면 작업실과 집, 때때로 운동, 산책이다. 운동과 산책은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중에 끼어 있으니, 결국은 작업실과 집 사이에 요즘의 내 생활이 다 담겨 있다. 보통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5시쯤. 더 늦을 때도 있고 일찍 올 때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새벽인 건 변함없고 늦을 때가 더 많으며 집에 오면 늘 자야 할 시간이다. 작업할 때는 노동요 리스트를 무한반복해서 듣기 때문에 집에 오면 차분한 음악을 듣는다. 죽을 끓여 먹는다. 자야 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아 무거운 건 못 먹겠고 그래도 뭔가는 먹고 싶고 음악은 듣고 싶고, 선택하게 되는 건 죽이다. 천천히 죽을 먹으면서 음악을 듣는다. 하루의 마무리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린다. 자야 하지만 당장 자기 싫어서 괜히 더 만지작 거린다. 그러다보면 공허해져서 블로그를 연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몇 번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반복한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겨우 몇 자 적는다. 더 쓰고 싶은데, 내 안에 있는 걸 더 토해내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정도라도 썼으니 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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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는 별책부록>을 보다가 이나영에게서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을 본다. 사실 지금의 이나영에게 전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주 가끔, 전경을 그리워 하는 내가 아주 가끔, 발견할 뿐이다. 이나영에게 전경은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나영의 과거는 모두 전경이었다. 최근의 복귀작 <뷰티풀 데이즈>와 <로맨스는 별책부록>에서 이제야 전경이 아니었다. 그전의 이나영은 모두 나에게 전경. 그 시절의 나였다. 
현재의 이나영에게 전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 남아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나는 계속해서 지워지고 흐릿해져 가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나는 나다. 다 잊혀졌다고 생각해도, 아니 잊혀졌다고 여기지도 못할 만큼 현재에 집중해서 살아가다가도 불현듯 온다. 과거의 나는. 아까 이나영의 모습에서 전경을 본 것처럼. 한 순간에 그 시절이 소환된다. 2002년. 월드컵이 휩쓸고 지나갔던 그 여름, 나는 <네 멋대로 해라>에 울고 웃었다. 지금도 <네 멋대로 해라>를 생각하면 운다. 아까 이나영의 연기를 보며 전경이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와르르 무너졌다. 그 말투에, 그 얼굴에, 텅빈 청춘이 있었고 뜨거운 여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이제 37살이 된 내가. 매일 글을 쓰고 쓰고 쓰다가 잠이 드는 삶을 살고 있다. 내 삶은 점점 단조로워지고, 불필요한 것들이 다 걸러지면서 자연히 글만 거름망에 남는다. 얼마 전 한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글을 못 쓰게 되면 그냥 죽게 될 거야, 라고 말했다. 그건 죽겠다, 라는 의지이기보다는 아마 자연스럽게 나는 죽게 될 거라는 의미였고, 그건 조금의 과장도 허세도 아니었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글을 못 쓰게 되는 내 삶은, 살아있다 해도 아마 여분의 삶일 거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지내다 보니 봄이었고, 지내다 보니 겨울이었고, 지내다 보니 나는 30대가 됐고, 37살이 된 것처럼, 어느새 글을 못 쓰는 삶은 삶이 아닌 게 되어 버렸다.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살다보니, 살다보니 다 지금의 모습이 된 거겠지. 오늘 집필하던 작품에 그런 지문을 쓰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모두 어릴 때 꿈꾸던 내가 되셨나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새벽. 모두 잘 지내나요. 살아 있습니까. 나는 이런 내가 됐습니다. 전경이 시간이 흘러 강단이가 된 것처럼, 20대의 나는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내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 말투에, 그 얼굴에, 과거의 나를 보고, 텅빈 청춘을 본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마지막엔 늘 잘 살자, 잘 살아야지, 다짐한다. 이뤄질 수 없는 소원을 비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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